Feb 20 2020

당분간 묵을 곳이 너무나 총체적인 난국상태라 청소용품을 한가득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방금 시외버스에서 내렸다는 것이다. 즉, 오지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사전연락 없이 올라오셨다는 얘기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왜 엄마는 내가 하는 말을 그냥 인사치레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더 힘들다는 것을 언제 아실까. 80이 넘은 노인네가 딸래미 수발을 하겠다고 온다면 그 수발을 받는 딸은 맘편하게 앉아서 받을수 있을거라고 정말로 생각을 하시는 걸까.. 
엄마는 딸이 암에 걸렸다고 하니 주위에서 들은 말도 있고 하루종일 걱정에 걱정만 하셨을 거다. 그러니 그 연세에 병원에서 간병을 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퇴원후에는 집에와서 수발을 하겠다고 하시는 건데 세상의 어느 딸이 나이먹은 엄마의 수발을 맘편히 받을수 있겠는가 말이다. 수술한 다음날 병원에 오신걸 간신히 되돌려 보냈다. 그랬더니 집에 돌아가는 날 집으로 오시겠다고 성화를 부리시니 어쩔수 없이 모시고 와서 주말에 다시 모시고 갔다.
본의아니게 엄마와 오랫만에 둘이 있으니 좀 편하게 계시고 문화생활도 좀 하시라고 사위가 다니는 회사도 구경시켜 드리고 영화도 보고 점심도 나가서 사먹고 쇼핑도 하면서 보냈다. 엄마도 아빠한테 매여서 산속에서만 지내다가 이렇게 도시생활을 하니 스트레스가 풀리시나보다. 그래서 그냥 이걸로 위로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있는 원룸으로 쳐들어오셨으니 또한번 난감해졌다. 여기는 좁고 잠잘곳도 마땅치 않은데다가 TV도 없어서 엄마가 밤에 시간을 보낼만한 것들이 전무한 것이다. 남자애 혼자 있으니 주방씽크는 사용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이 와중에 먹을 것을 해가지고 오셨다. 누가 먹는다고...ㅠ.ㅠ 결국 이번에도 엄마를 모시고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백화점 한바퀴 돌아보고 커피마시고 은행가서 볼일도 보고 보내드렸다. 아직 분당에서 한달정도를 있어야 하는데 또 오신다고 할까 걱정이 되어 오시려면 주말에 집으로 오시라고 했는데 불안하다.
엄마만 이런것이 아니라 이모도 마찬가지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신 날부터 전화를 하셔서 걱정을 하시더니 병원에 찾아오시는 건 기본이고 잘먹어야 한다며 찹쌀떡을 보내시고 점심을 사주러 오신다고 한다.
사실 나는 차라리 혼자서 조용히 있는걸 선호하는 편인데 주위에서 이렇게 걱정을 해주니 고마운 마음과 함께 불편한 마음도 있다. 전화가 너무 자주 오는것도 사실 귀찮고 누구라도 오면 상대를 해야하는 것도 힘들다. 그저 혼자 조용히 있는게 좋은데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하기도 쉽지않고.. 더구나 이렇게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더욱 어렵다.
혼자서 괜찮다는 말을 왜 믿지 않을까. 힘들면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할텐데...
엄마는 이제 연세가 연세니만큼 더 확실하게 말도 못하겠다. 그냥 나중에 내가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 하는 마음에 엄마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엄마도 말안통하는 아빠와 친구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24시간을 계셔야 하니 스트레스를 풀 상대가 필요할 것이고,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차이가 나니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쉽지않다. 할수 있을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지 하면서도 불편한 건 맘에 안든다.

                                      유후인에 갔을때의 엄마와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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